(<최승희 다큐멘터리> 제작 노트: 2017/2/1-2017/5/31)
최승희의 단발머리
최승희의 평전과 소설을 보면 그의 단발머리가 남편의 제안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 꽤 나온다. 예컨대 정병호(387)는 “최승희의 단발머리는 안막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면서 “최승희의 특징을 살리려고 머리 모양을 고정시키도록 조언”했는데 “솔로 댄서인 그이가 머리에 쓴 관을 신속하게 쓰고 벗을 수 있게”하거나 “수시로 가발을 하자면 단발이 필요했다”고 했다.
의문이 들었다. 여자가 머리를 남자한테 맡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최승희 자신이 원래 충분히 개성 있고 세련된 여자다. 아무리 ‘튀’더라도 자기 스타일은 자기가 정하는 여자다. 옷차림과 구두만 봐도 알 수 있다. 남편이 패션 전체를 코디를 해 주었다면 또 모를까, 머리 스타일만 안막이 제안했다는 게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물론 이런 의혹은 직관적인 것이다. 그러나 ‘단발 안막 제안설’도 그다지 근거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저자도 이를 뒷받침할 증거나 증언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객관적 증거가 될 만한 것을 찾아봤다. 증거는 정병호 자신의 책에 있다. 사진들이다. 정병호의 추측대로라면 최승희의 머리 모양은 안막을 만난(1931) 이후 달라졌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진들을 시간 순으로 보면 최승희의 머리 모양이 바뀐 것은 안막을 만나기 전인 1926년경이다.
정병호의 책 19쪽에 최승희가 숙명여학교 재학 중이던 1925년의 사진이 나온다. 이때는 긴 머리를 귀가 드러나게 뒤로 넘겨서 한 댕기로 묶었다. 31쪽의 사진은 최승희가 토쿄 도착한 직후의 사진이다. (사진 설명에 ‘동경으로 떠나기 전에 찍은 사진’이라고 했지만 오해다. 사진 상단의 날짜가 1926년 4월이고 도일즉시(渡日卽時)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최승희가 서울을 떠난 날은 3월25일이다. 김찬정은 최승희가 토쿄에 도착한 날을 3월24일이라고 서술했다.) 그런데 이때도 긴 머리다. 다시 말해 최승희는 토쿄에 도착할 때까지 긴 머리였다는 말이다.
최승희가 도꾜에 도착해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다른 사진에서도 최승희는 가운데 가르마를 타고 뒤로 묶어서 한 댕기로 넘긴 머리를 보여준다. (이 사진이 도일 직후의 사진이라고 여겨지는 이유는 한복을 입고 고무신을 신었을 뿐 아니라 여행용 가방 위에 걸터앉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시이 바꾸 무용연구소에 재학했던 전 시기의 사진들에서 최승희는 단발이다. 최승희뿐 아니라 다른 연구생들도 단발머리가 많다(39, 41, 69쪽). 58쪽의 ‘이시이 연구소의 일본인 연구생과 함께 찍은 열일곱살 때’의 사진에는 최승희는 단발이지만 다른 연구생은 긴 머리다. 연구생들이 모두 의무적으로 단발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연구소 입소 후 1년반이 지난 후에 최승희가 이시이 바쿠의 2차 경성 공연에 따라왔을 때의 사진도 단발이다(44쪽). 51쪽의 같은 시기 사진에는 모자를 쓰고 있어 식별이 어렵지만, 역시 단발머리로 추정된다.
이시이 바쿠 연구소를 떠나서 경성에 돌아와 무용연구소를 열었을 때의 사진(55쪽)에서도 최승희는 단발이고, 1931년 청량리의 청량원에서 찍은 결혼식 사진에서도 최승희는 원피스에 단발머리였다(64쪽). 이후 해방 전까지 최승희가 긴 머리를 한 사진은 전혀 없다.
이렇게 보면 최승희가 단발로 바꾼 것은 연구소에 입소 직후이다. 다른 연구생들도 대부분 단발이었던 것으로 보아, 무용 연습에 방해되지 않게 머리카락을 자른 게 아닌가 싶다. 긴 머리는 아무래도 관리에 많은 주의와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무대에 서기 시작한 이후엔 가발이나 모자나 관을 쓰는 데에 편해서 단발을 했을 수 있다. (이점도 의문이긴 하다. 긴 머리가 반드시 모자나 관을 쓰는 데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다른 연구생 중에는 긴 머리도 많았다.)
암튼 최승희가 머리 모양을 단발로 바꾼 것은 안막의 조언 때문이라기보다는 연구소에 입소한 직후 연습에 매진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나 최승희도 다른 연구생들처럼 머리를 기를 생각도 했을 것이다. 바로 그때 안막이 단발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조언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남편 제언으로 단발을 시작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최승희가 단발을 시작한 것은 안막과 만나 결혼한 1931년 5월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전인 연구소 입소 시기(1926년 4월경)이기 때문이다. (2017/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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