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14, 2017

ss03-안막(安漠)의 이름

(<최승희 다큐멘터리> 제작 노트: 2017/2/1-2017/5/31)
안막(安漠)의 이름
안막의 이름에 대한 의문도 있다. 안막의 본명은 안필승이다. 안필승이 안막으로 개명한 것은 최승희의 스승인 이시이 바쿠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서술한 문헌이 꽤 있다. 이시이 바쿠(石井漠)과 안막(安漠)의 이름 한자가 같기 때문이다. 강준식(2012, 85)도 그렇게 썼고, 위키 백과사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안막은 안필승이 글을 발표할 때 쓰던 필명이다. 그가 이 필명을 사용한 것은 늦어도 1929년부터이다. 1929716일자 <동아일보>의 기사 <‘예 동경지부, 푸로극장 전조선 순회공연>을 보면 푸로 예술동맹 동경 지부 소속인 프로레타리아 극장 리동부대는 전 조선을 순회하야 행연하고 각처에서 강연회도 겸하야 열터라고 전하면서, <하차(荷車)>라는 작품의 연출가가 안막이라고 밝히고 있다. 안막이라는 필명이 1929년에 이미 정착되었다는 말이다.
최승희 자신도 잡지 <삼천리(193810월호)>에 실은 아하, 그리운 신부시절이라는 글에서 박영희의 서재에서 안필승을 처음 만난 날을 회상하면서 그의 다른 이름이 안막이라는 것도 그날 알았다고 했다. 최승희가 안막을 처음 만난 그날은 결혼 직전의 19313월경이다.
안막은 동경 유학시절에도 최승희를 알고 있었고, 이시이 바쿠의 무용발표회를 관람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때 안막이 최승희에게 연정을 품었다는 기록이나 증언은 없고, 또 러시아 문학도가 연극인 이시이 바쿠를 좋아해 그의 이름을 필명으로 차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안막에 대한 이시이 바쿠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최승희가 두 번째로 이시이 바쿠의 문하생이 되었던 1933년 이시이 바쿠는 안막에게 정치를 그만 두라고 요구했고 안막은 바로 정치에서 손을 뗐다. 또 안막이 도쿄의 한 출판사에 취직하려 하자 이시이 바쿠는 작가는 많이 있으나 최승희와 같은 무용가는 나오지 않으니 최승희를 높여 주시오하고 요구했고, 안막은 문학 활동도 접었다. 그리고는 최승희의 전업 매니저가 되었다.

그 정도로 안막은 이시이 바쿠의 권위에 복종했다. 이같은 존경과 복종 때문에 같은 이름을 갖게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올 법은 하다. 하지만 그것이 개명의 동기였을 수는 없다. 안필승은 이시이 바쿠를 개인적으로 만나기 이전에 이미 안막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필승이 안막이라는 필명을 사용한 시기는 언제일까? 그리고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정병호(1995)는 안막이 이른바 펜네임으로 잡지사에서 지어준 이름이었다고 서술한 바 있다. 이는 최승일이 편집한 최승희의 <나의 자서전(1936)>에 나오는 기록으로 인용되어 있다.
안막이라는 이름을 안필승이 직접 지었든, 혹은 한 잡지사에서 지어주었든, 그 이름을 채택한 이유는 뭘까? 후암재단 윤석진 주필은 사회주의자 안필승은 천재적인 공산주의 이론가 마르크스의 이름을 한자로 축약한 을 필명으로 선택한 것이 아닌가고 추측했다. 이와 비슷하게 아리랑문화연구소의 차길진 이사장도 “<애정산맥>을 집필하느라 지리산 인근을 취재할 때 마을마다 막수라는 이름이 자주 발견되었다고 증언했다. 빨치산에 가담한 지역 주민들 중에서 아들을 낳으면 막수라는 이름을 붙였던 사람이 꽤 있었던 것이다.
한국 문학에도 막수라는 이름은 두 부류로 나온다. 하나는 막되어 먹은 놈이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마르크스의 한국식 음차이다. 전자는 고우영의 <일지매>에서, 후자는 이창동의 <용천뱅이(1993)>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안필승이 안막을 필명으로 삼은 것은 아무래도 후자의 경우, 마르크스의 축약 음차어로 을 필명으로 채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최승희의 남편이 스승과 같은 이름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아마도 1933년 세 사람이 지유가오카에서 다시 만났을 때 스승과 남편의 이름이 같아서 재미있어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연의 일치였을 뿐이지 안막이 이시이 바쿠의 이름을 필명으로 따온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2017/2/15,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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