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14, 2017

ss02-<반도의 무희>와 <더킹>, 그리고 <세 얼간이>

(<최승희 다큐멘터리> 제작 노트: 2017/2/1-2017/5/31)
<반도의 무희><더 킹>, 그리고 <세 얼간이>
올해 초(1/18) 개봉된 영화 <더 킹(2017)>은 작품성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지만 흥행에는 성공했다. 박근혜 탄핵의 한가운데서 주요 이슈로 떠올랐던 블랙리스트 덕분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요인이 한 가지 더 있다. 춤이다. 허술한 스토리라인에도 불구하고 세 번이나 등장하는 집단무가 그 허술함을 보강해 주었기 때문이다.

80년전 19363월 토쿄에서는 최승희의 <반도의 무희>가 개봉되었다. 토쿄의 신흥(新興) 키네마가 제작, 조선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일본인 유아사 가쓰에가 원작 소설, 프랑스에서 영화를 공부한 곤 히데미가 감독을 맡아 완성된 영화다. 유아사 가쓰에의 원작 소설은 <노도의 보>라는 작품으로 따로 발표되어 최승희 연구가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반도의 무희>에 대한 평은 대단히 나빴다. 원작 소설가인 유아사 가쓰에마저도 영화가 원작에 충실했다고 말하기 어렵고 재미도 별로 없었다. ‘인재라고 불리는 곤 히데미의 제1회 감독 작품으로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평했다.
남우주연을 맡았던 센다 고레야도 통탄했다. “나도 일본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 처음이고 그녀(최승희)도 처음이었는데 감독인 곤 히데미 역시 영화는 처음 촬영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결국 변변한 작품이 되지 못했고...”
아사히 신문의 평은 신랄했다. “...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시나리오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없었다는 점이다. 센다 고레아(남자 주연)와 무용연구소에 입소한 여성의 교섭이 끊어져 있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고 갑자기 은사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도 실소를 금하기 어려우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거친 진행에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아사히 신문 1936331)
그런데도 <반도의 무희>는 흥행에 성공했다. 일본 전역에서 4년이나 장기 상연됐다. 히데미 감독의 말이다. “회사는 4년 동안 이 영화로 수입을 올렸다. 일본 전국을 4년 동안이나 돌면서 상영했기 때문이다. ... 어쨌든 나는 4년동안 회사에서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평론가와 지식인들로부터 우작평가를 받은 영화가 이렇게 롱런하면서 큰 수익을 안겨준 까닭이 뭘까? 최승희의 춤이다. 스토리라인이 엉망이더라도 중간 중간에 삽입된 최승희의 무용 장면이 스토리의 허점과 연기자들과 감독의 미숙함까지도 무마시켜 주었던 것이다.
<더 킹>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불량 청소년이 명문대생으로 둔갑하고, 얼결에 운동권 경력을 가졌다가 검사 임용을 받는가 하면, 검사와 조폭이 협력하는 등의 비현실적인 설정과 진행에도 불구하고 조인성과 정우성과 배성우가 클론의 과 자자의 버스 안에서에 맞춰 추는 집단무는 그 모든 미흡함을 봉합하고 관객들의 흥을 돋워주고 몰입시켜 준 것이다.

영화 속에 뮤지컬과 집단무를 도입해 성공을 거두는 관행은 인도 영화의 특징이다. 요즘 발리우드 영화는 장르를 막론하고 주인공들의 단독무나 이인무, 혹은 수십명 혹은 수백명의 집단무를 반드시 끼워넣는다. 스토리라인을 보강할 뿐 아니라 감정전달을 쉽게 해주기 때문이다.
인도 영화 <세 얼간이(Three Idiots)>(2009)가 대표적인 예이다. 2010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못 말리는 세 친구>라는 제목으로 상연되어 절찬을 받은 바 있는 이 작품의 메시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라입시위주의 고질적인 주입식 교육의 비판이다. 내용이 빤한 영화인데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것은 중간 중간에 뮤지컬처럼 삽입된 춤이다. (물론 영화의 춤에 익숙치않은 한국 관객들 중에서는 불편함이나 어색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더 킹>의 성공을 보면 그것은 익숙치않음의 다른 표현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최승희가 시작했던 영화 속의 춤은 인도의 발리우드 영화들이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듯한 양상이다. 최승희 이후 80년이나 지나서 <더 킹>이 선풍적인 인기와 함께 신선함을 주는 것을 보면, 최승희가 시작했던 창의적인 신종 한류가 너무 오래 지체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2017/02/13,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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