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14, 2017

ss04-체부동 137번지

(<최승희 다큐멘터리> 제작 노트: 2017/2/1-2017/5/31)
체부동 137번지
체부동 137번지는 최승희의 여학교 시절 집주소다. 강준식(2012)은 이 주소 이야기로 <최승희 평전>을 시작한다. 지금은 서촌의 식당 <토속촌 삼계탕>이 되어 있는 곳이다. 삼계탕 매니아인 나도 철마다 들르는 이 식당이 최승희가 살던 집이라니...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 찾던 맛집이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보다 약간 더 감동적이다. 강준식은 그 근거로는 니시키 마사야키(西木正明)<떠돌이 무희(流離いの舞姬)>(2010)를 들었다.

최승희도 <삼천리(19361월호)>에 기고한 <나의 무용 10년기>에서 “1926319일 오후 ... 나는 기운 없이 체부동 골목길을 올라갔다고 쓴 대목이 있다. 번지수가 나오지는 않지만 집이 체부동에 있었다는 말이다. 최승희의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학적부를 보면 주소가 확실해 지겠는데, 학적부를 인용한 저서는 아직 없는 듯하다.
또 하나의 중요한 증거는 최승희의 오빠 최승일이다. 1926627일자 <동아일보>는 최승일이 1926614<라디오극 연구회>를 창립하고 그 사무소는 시내 체부동 137번지에 두었다고 보도했다. 최승희가 이시이 바쿠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 1926325일이니까 약 한달 반 후이다. 최승희를 보내고 나서 최승일도 바로 라디오극 연구회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후 최승일은 경성방송국에 근무하게 되는데, 이는 한국방송(KBS)의 모태이다.
하지만 더 조사해 보니 강준식의 서술이 꼭 정확한 것만은 아니다. 그는 현재는 체부동 85-1번지인데 해방 전에는 체부동 137번지였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지적도를 확인해 보니 그런 주소 변화는 없었다. 체부동 137번지와 85-1번지는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서로 다른 주소다. 지금도 네이버의 지도 프로그램으로 확인할 수 있다. 최승희가 살던 집은 토속촌 식당이 아니라 그 골목 맞은편 집이었던 것이다.
나는 지난 주말 그 주소로 가 봤다. (내 집에서는 자전거로 10분 거리다.) 토속촌 근처에서 체부동 136번지와 139번지는 찾았지만 137번지에는 집이 없었다. 그 자리는 토속촌의 주차장이 되어 있었다. 성업 중인 토속촌이 그 집을 매입해 허물고 주차장으로 바꾼 것이다.

토속촌이 헐어버린 집이 최승희가 살던 집은 아니다. 1926년의 137번지는 초가집이었다고 했다. 초가집이 1990년대까지 남아 있었을 리 없다. 추가조사를 해보니 나보다 먼저 체부동 137번지를 답사했던 사람이 두 사람이나 더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선 체부동 137번지를 본적지로 가졌던 한 블로거의 포스팅이 있었다. 그는 최승희보다 최승일에 초점을 맞췄다. 아마도 그 블로거는 방송 종사자가 아닌가 싶었다. 그도 내가 <동아일보>에서 찾은 최승일의 <라디오극 연구회>의 주소지가 그곳이었던 사실을 지적해 놓았다.
또 한 명의 답사자는 그 블로거가 인용한 다른 저자였다. 월간 <방송문예>라는 잡지 19897월호에 <방송드라마 발달사: 한국 방송극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글을 쓴 임영웅은 토속촌이 매입해 허물기 전의 가옥을 직접 답사하고 이런 글을 남겼다.
이 모임(라디오극 연구회)의 사무소로 보도된 체부동 137’번지가 어떤 연유로 사무소로 쓰였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 의문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필자는 지난 봄 어느 토요일 오후, 문제의 현장을 답사했다. 체부동 성결교회 앞을 지나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니 기와집을 개조한 자그마한 주택에 체부동 137번지란 표지와 새문안교회교인임을 알리는 작은 매말이 붙어있었다. 그러니까 워낙 오래전 일이어서 1926년 당시의 소유주는 끝내 알아내지 못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임영웅은 최승일의 라디오극 연구회사무소 주소가 어째서 체부동 137번지였는지 몰랐던 것 같다. 그는 집 주소를 사무실 주소로도 쓴 것이었다.
이 주소는 한국 근대 문화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때 그 초가집에서 최승희가 한국 근대 무용을 시작했고, 최승일이 한국 근대 방송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2017/03/05,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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